
엄마는 새벽 1시부터 병원 침대에서 진통을 시작하고 아침을 지새우고
점심도 굶어가며 아기를 낳았다.

선덕여왕을 보다보니..
"분노가 먼저다." 라는 대사가 보이던데 용서보다 복수가 우선.
복수의 방법 - 둘.
1940년. 영국은 독일에게 ‘덩케르크의 굴욕’을 경험하며 서유럽 전선에서 완패한다. 곧 영국마저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질 국면이었지만 독일에겐 섬나라 영국을 공략할 해군력이 빈약했다. 영국의 처질은 골수 반공주의자였다. 히틀러도 반공주의라는 측면에서는 처칠과 같은 부류였다. 히틀러는 영국에 절대적으로 우세한 공군력으로 압박을 가하며 영국이 명예롭게 항복하길 기대했다. 히틀러는 ‘영국과는 세계를 양분할 용의도 있다.’는 식의 외교적 대사를 날리면서 대략 승부가 난 셈이니 더 이상 무의미하게 싸우지 말고 같은 우파끼리 손잡고 빨갱이를 쳐부수자고 부추겼던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대영제국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처칠은 히틀러의 기대를 개무시하며 독일을 쳐부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면서 소련과 연합을 한다. 그리고 처칠은 대독항쟁 연설에서 국민들에게‘오직 피와 땀과 눈물만을 약속할 수 있을뿐.’이라고 선언하면서 영국을 철저한 전시체제로 몰고 간다.
처칠의 이른바 ‘전시 통치’는 그의 적 나찌 독일에 비견될 만큼 독재적 성격을 내포했다. 사실상 민주주의는 정지되었다, 군부는 독일 스파이를 적발한다며 언론사를 통제했으며, 경찰은 징발이라는 미명하에 민간인의 재산을 공공연하게 강탈했다. 거의 모든 남자가 징집되어 전선에 끌려갔고, 생산현장에는 여성들이 동원되었다. 공습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대도시에서 강제로 소개되어 시골로 보내졌다. 한마디로 처칠은 영국을 문자 그대로의 총력전 체제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처칠의 ‘복수’는 집요하고 잔인했다. 독일 공군력을 궤멸시키고 제공권을 확보하자 ‘전략폭격’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민간인 거주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것이다. 물론 민간인 폭격은 독일이 먼저 시작한 일이었지만 영국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함부르크나 드레스덴 폭격은 군사전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방적 민간인 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처칠의 복수는 완벽했다. 독일은 초토화 되었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나찌들은 전범으로 단죄되고,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는 두쪽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처칠은 승전 직후 실각한다. 그의 ‘전시 독재’는 물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렇다고 영국인들의 악몽같은 전시생활에 대한 감정의 앙금마저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략폭격을 진두지휘했던 영국 폭격기대 대장 아서 해리스 장군은 전승국 장성 중 유일무이하게 무공훈장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복수를 이루어냈다. 나는 믿는다.
정권과 훈장보다 그 한 가지가 그들을 행복케 했으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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