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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두가지 복수 2009/07/26 14:45 by 동규

선덕여왕을 보다보니..

"분노가 먼저다." 라는 대사가 보이던데 용서보다 복수가 우선.


복수의 방법 - 둘. 

1940년. 영국은 독일에게 ‘덩케르크의 굴욕’을 경험하며 서유럽 전선에서 완패한다. 곧 영국마저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질 국면이었지만 독일에겐 섬나라 영국을 공략할 해군력이 빈약했다. 영국의 처질은 골수 반공주의자였다. 히틀러도 반공주의라는 측면에서는 처칠과 같은 부류였다. 히틀러는 영국에 절대적으로 우세한 공군력으로 압박을 가하며 영국이 명예롭게 항복하길 기대했다. 히틀러는 ‘영국과는 세계를 양분할 용의도 있다.’는 식의 외교적 대사를 날리면서 대략 승부가 난 셈이니 더 이상 무의미하게 싸우지 말고 같은 우파끼리 손잡고 빨갱이를 쳐부수자고 부추겼던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대영제국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처칠은 히틀러의 기대를 개무시하며 독일을 쳐부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면서 소련과 연합을 한다. 그리고 처칠은 대독항쟁 연설에서 국민들에게‘오직 피와 땀과 눈물만을 약속할 수 있을뿐.’이라고 선언하면서 영국을 철저한 전시체제로 몰고 간다. 

처칠의 이른바 ‘전시 통치’는 그의 적 나찌 독일에 비견될 만큼 독재적 성격을 내포했다. 사실상 민주주의는 정지되었다, 군부는 독일 스파이를 적발한다며 언론사를 통제했으며, 경찰은 징발이라는 미명하에 민간인의 재산을 공공연하게 강탈했다. 거의 모든 남자가 징집되어 전선에 끌려갔고, 생산현장에는 여성들이 동원되었다. 공습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대도시에서 강제로 소개되어 시골로 보내졌다. 한마디로 처칠은 영국을 문자 그대로의 총력전 체제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처칠의 ‘복수’는 집요하고 잔인했다. 독일 공군력을 궤멸시키고 제공권을 확보하자 ‘전략폭격’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민간인 거주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것이다. 물론 민간인 폭격은 독일이 먼저 시작한 일이었지만 영국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함부르크나 드레스덴 폭격은 군사전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방적 민간인 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처칠의 복수는 완벽했다. 독일은 초토화 되었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나찌들은 전범으로 단죄되고,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는 두쪽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처칠은 승전 직후 실각한다. 그의 ‘전시 독재’는 물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렇다고 영국인들의 악몽같은 전시생활에 대한 감정의 앙금마저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략폭격을 진두지휘했던 영국 폭격기대 대장 아서 해리스 장군은 전승국 장성 중 유일무이하게 무공훈장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복수를 이루어냈다. 나는 믿는다. 
정권과 훈장보다 그 한 가지가 그들을 행복케 했으리라는 사실을.



‘사랑’했었다면 이제 ‘악마’가 되라!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09-05-28)


복수의 방법 - 하나. 

병자호란.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 앞에서 신하의 예로 절을 하는 치욕을 경험한다. 

그 이후 조선은 사실상 청의 속국이 된다. 볼모로 끌려간 인조의 두 왕자 중 청과의 온건한 타협을 도모하던 소현세자는 귀국 직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청나라에 대해 강경 노선을 견지한 효종이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효종은 역사에서 ‘북벌론의 군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조선의 군사력 강화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전화를 겪은 조선의 국력으로 과연 북벌이 가능했을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효종은 중국대륙 내부의 한족-명나라 잔존세력-의 존재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조선이 압록강에서 치고 올라가면 한족도 중원에서 호응하여 봉기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인조반정 이후 조선의 집권당은 서인/노론 이었다. 노론당의 실질적 영수는 송시열. 국사 교과서에는 송시열이 효종을 도와 북벌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적혀 있는 모양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송시열의 노론당은 애초부터 강대국 청을 상대로 한 북벌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안되는 일에 목숨 걸었다가 청나라의 반격이라도 받는다면 쿠데타로 획득한 정권을 잃게 된다. 북벌불가, 현상유지. 노론당의 본심이었다.

그러나 서인 세력이 저지른 인조반정 쿠데타의 이유 중 하나가 오랑캐 나라 청에 대한 광해군의 유화적 태도였었다. 서인들은 명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고집하다가 병자호란의 치욕을 초래했었다. 그 원수를 갚겠다는 효종의 북벌론을 서인/노론당은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었다. 한나라당 민생타령의 원조가 이때 등장한다. ‘전하, 북벌도 좋지만 민생부터 챙기시옵소서 ’아마도 효종은 죽을 맛이었을 거다. 

북벌을 둘러싼 효종과 노론당의 줄다리기는 효종의 치세 내내 이어졌다. 노론당 우두머리 송시열은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북벌’의 의미를 효종에게 설파한다. 이게 정말로 걸작 논리이다. 

‘명나라가 멸망한 후 성리학의 법통은 대륙에서 끊어졌다. 이제 성리학의 법통을 계승할 유일한 나라는 소중화(小中華) 조선이다. 따라서 진정한 복수, 즉 북벌은 청나라를 무력으로 정벌하는 무모한 행동이 아니라 조선에서 성리학의 이념을 지고의 수준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대략 이런 취지이다. 

효종은 굽히지 않았다. 결국 노론에게 계속 왕명을 무시하고 북벌에 소극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는 최후통첩을 던진다. 그 직후. 효종은 자신의 형처럼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송시열은 정말로 그가 주장했던 ‘진정한 북벌’로 청나라에 ‘복수’하며 인생을 살다 죽는다.  교조적 성리학자로서, 오리지날 성리학 이념을 후기 조선사회에 구현하는 일를 위해 한평생을 바치면서.

복수의 방법 - 둘. 

1940년. 영국은 독일에게 ‘덩케르크의 굴욕’을 경험하며 서유럽 전선에서 완패한다. 곧 영국마저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질 국면이었지만 독일에겐 섬나라 영국을 공략할 해군력이 빈약했다. 영국의 처질은 골수 반공주의자였다. 히틀러도 반공주의라는 측면에서는 처칠과 같은 부류였다. 히틀러는 영국에 절대적으로 우세한 공군력으로 압박을 가하며 영국이 명예롭게 항복하길 기대했다. 히틀러는 ‘영국과는 세계를 양분할 용의도 있다.’는 식의 외교적 대사를 날리면서 대략 승부가 난 셈이니 더 이상 무의미하게 싸우지 말고 같은 우파끼리 손잡고 빨갱이를 쳐부수자고 부추겼던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대영제국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처칠은 히틀러의 기대를 개무시하며 독일을 쳐부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면서 소련과 연합을 한다. 그리고 처칠은 대독항쟁 연설에서 국민들에게‘오직 피와 땀과 눈물만을 약속할 수 있을뿐.’이라고 선언하면서 영국을 철저한 전시체제로 몰고 간다. 

처칠의 이른바 ‘전시 통치’는 그의 적 나찌 독일에 비견될 만큼 독재적 성격을 내포했다. 사실상 민주주의는 정지되었다, 군부는 독일 스파이를 적발한다며 언론사를 통제했으며, 경찰은 징발이라는 미명하에 민간인의 재산을 공공연하게 강탈했다. 거의 모든 남자가 징집되어 전선에 끌려갔고, 생산현장에는 여성들이 동원되었다. 공습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대도시에서 강제로 소개되어 시골로 보내졌다. 한마디로 처칠은 영국을 문자 그대로의 총력전 체제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처칠의 ‘복수’는 집요하고 잔인했다. 독일 공군력을 궤멸시키고 제공권을 확보하자 ‘전략폭격’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민간인 거주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것이다. 물론 민간인 폭격은 독일이 먼저 시작한 일이었지만 영국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함부르크나 드레스덴 폭격은 군사전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방적 민간인 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처칠의 복수는 완벽했다. 독일은 초토화 되었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나찌들은 전범으로 단죄되고,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는 두쪽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처칠은 승전 직후 실각한다. 그의 ‘전시 독재’는 물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렇다고 영국인들의 악몽같은 전시생활에 대한 감정의 앙금마저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략폭격을 진두지휘했던 영국 폭격기대 대장 아서 해리스 장군은 전승국 장성 중 유일무이하게 무공훈장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복수를 이루어냈다. 나는 믿는다. 
정권과 훈장보다 그 한 가지가 그들을 행복케 했으리라는 사실을.
  
‘사랑’했었다면 이제 ‘악마’가 되라!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누가 뭐래도 그의 죽음은 “정치보복에 의한 포괄적 살인행위의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이 천인공노할 범죄를 철저히 응징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마도 우리시대 최대의 수치이자 오욕으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이 끔찍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저들을 가차 없이 응징해야 한다. 

나는 두가지 복수의 방법을 적었다. 어떻게 복수하고 응징할 것인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의 이상을 고이 간직하고 지키기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저들을 정치적, 물리적으로 단죄할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인가. 송시열과 처칠. 과연 누구의 길을 따를 것인가. 

나는 노무현을 계승하려는 정치인들에게 감히 고한다.
그를 진정 사랑했었다면 이제 '악마'가 되라고. 

ⓒ 내과의사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5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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